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조상이다. 이 세 종교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 이길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그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살던 곳이 거대한 문명의 도시 갈대아 우르인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할 것도 없는 보통 사람에 불과 했다. 게다가 나이가 75세가 되도록 자식도 없이, 알지도 못하는 이방 땅을 유리하던 소망 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복의 근원’이라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성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대답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3:6~7)
하나님은 아브람이라는 이름 없는 한 노인을 찾아가 그를 불러 주시고,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가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을 때가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오히려 절망가운데 있을 때 찾아가 그에게 약속을 주신 것이다. 아브람은 다만 그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감으로 ‘복의 근원’이 되었다. 이것이 그가 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념과 다르다. 긍정의 힘도 아니며, 우주의 기운을 부르는 ‘시크릿’도 아니다. 믿음은 인격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하시는 분을 신뢰함으로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앞에 드러난 어떤 ‘성취’가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과의 ‘관계’이다. 그 인격에 대한 신뢰로 인해 보이지 않는 길도 따라 갈 수 있는 관계를 ‘믿음’이라 부른다.
아브람은 그렇게 아직 자식이 없을 때 ‘아브라함’, 즉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말씀을 따라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그에게 있는 증거라곤 그 약속의 말씀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하시는 분을 따라 ‘보이지 않는 길’로 ‘모험’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의 걸음을 통해 인류 전체가 복을 받게 되는 약속을 친히 이루어 주셨다.
성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고후5:7) 믿음의 삶은 자신의 경험이나 감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그래서 그 인생은 알 수 없는 모험으로 가득하다. 때로 이 ‘믿음의 모험’이,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고 무모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오히려 그는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길을 따라간 것이다. 그를 부르신 분이 바로 온 우주 만물과 그의 인생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요, 그를 사랑하시는 참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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