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장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당시 여성 노동자는 열악한 근로여건 개선 뿐 아니라 참정권 또한 요구해야 했습니다. 미국 여성은 1920년까지 투표권이 없었거든요.
지지난 주 주보에 실었던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이러한 남성 중심의 세계가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는지 데이터를 통해 설명하는 책에 대한 독후감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란 부분은, 생체 실험을 위해 사용하는 실험용 쥐는 주로 수컷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암컷 생쥐는 호르몬 주기 등 복잡한 요인이 많아 수컷에 비해 실험 결과에 변동이 심해서 그동안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은 남성에게는 효과가 좋지만, 여성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수컷 쥐가 아닌 암컷 쥐로 시험했더니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은 태아나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빠르고 강력한 면역반응을 가졌는데 때로는 이것이 과잉 반응하여 자기 몸을 공격합니다. 2014년에 발행된 논문은 독감백신을 남자용, 여자용으로 나누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의료 분야만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지난 수십년간 만들어진 영화 속 등장인물을 분석했더니 대사 있는 배역의 28%만이 여자였습니다. 세상의 반은 여성인데, 남자가 제작하는 영화 속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는 남자가 설계한 악기로 여자 손 크기에 맞지 않습니다. 피아노 악보의 운지법 역시 남성 작곡가가 자기 손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성 피아니스트는 연주하기 불편합니다.
남자 종신 교수 가운데 자녀가 있는 사람은 70%지만, 여자 종신 교수 가운데 자녀가 있는 사람은 44% 뿐입니다.
사무실의 표준 온도를 결정하는 공식은 40세 70kg 남자의 기초대사율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한여름의 사무실에서 남자는 여름옷을 입고 있지만, 여자는 담요로 몸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이 '사회의 근본적인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세상의 자원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이 결핍은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항상 약자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손해를 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흑인보다 여성이 더 늦게 투표권을 부여 받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 문제들의 최종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투기 조종석을 남성용/여성용으로 따로 만들고, 공연장마다 남성용/여성용 피아노를 따로 구비하고, 집집마다 싱크대를 남성용/여성용으로 2개씩 설치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기에 사회는 언제나 유한하고 여력이 없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인식의 개선이 급선무지만 근본적인 여유와 풍요로움 역시 필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젠더 문제 역시 해결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외로 꽤나 전문적인 영역, 산업과 정치 영역에서도, 중요한 많은 일들이 '그간 별문제 없었으면'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영역이든 결국 사람이 결정하고 일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책처럼 '소리 높여 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타나 더 자주, 더 시끄럽게 알려야 합니다. 어려운 주제지만 저도 더 떠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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