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답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나오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꾸밈이 없으면 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니라”(창6:5)
죄로 인해 오염되어 하나님과 분리되자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다 악하여, 하나님께서 다스리라 명하신 이 아름다운 피조세계를 다 망쳐 버리는 빌런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대해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5:45)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해를 비추시고 불의한 자에게도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실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한 사람을 보면 그가 망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 악한 사람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느니라”(벧후3:9)
하나님과 동행하며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던 다윗은 왕이 된 뒤에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충직한 신하 우리아를 비열한 방법으로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것입니다. 그 죄의 무게를 생각할 때,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당장에 큰 벌을 내려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당장 ‘처벌’하는 대신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기는 부자이면서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분노하며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 때, 나단이 말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
나단이 다윗에게 한 이 말은 다윗처럼 죄를 짓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은 괜찮은 줄로 착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악인이 처벌 받길 원하지만,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악인인 것을 잊고 지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다윗의 이야기를 남겨 주시고, 우리가 다윗처럼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기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느니라”(잠3:11~12)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징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떠나 악한 길로 행할 때, 주님은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바른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낮추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다스림 아래 거하는 천국 백성에 합당하게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맘대로 하려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높아진 그는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천국(Kingdom of Heaven)에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천국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겸손히 받고, 자신을 낮추는 자를 위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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