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내 안에서는 이미 약속이 자라고 있어요 - 배이화 (20260315)

design_newbud 2026. 3. 22. 09:20

 

 

과학자이자 생태 인문학자이신 남효창 박사가 씨앗의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문학적인 고찰을 하는 <우리는 모두 씨앗이다> 라는 책을 보고 있습니다. 새움공동체원이라면 많이 듣고 부른 노래 '씨앗의 꿈'에서의 모티브도 이 놀라운 씨앗이지요.

민들레씨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자리잡고, 도꼬마리는 지나가는 생물에 달라붙어 이동합니다. 산벚은 동물에게 먹혀 이동하고, 유칼립투스는 불타고 남은 자리에서야 열립니다. 내린다고 곧바로 싹이 트는 것도 아닙니다. 수십년을 기다리는 씨앗도 있습니다. 자신의 설계도에 맞게, 알맞은 자리로 스스로 이동하며 발아의 시간을 기다리지만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계속 준비시킵니다. 

씨앗에는 다양한 발아방식이 있습니다. 해바라기나 강낭콩 같이 지상발아하는 씨들은 떡잎을 내어 땅위의 빛을 붙잡아 나아가고 완두콩이나 참나무같이 지하 발아하는 씨들은 땅속 양분을 붙잡습니다. 
참나무한테 눈에 보이는 떡잎을 내놓지 않는다고 나무란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너는 왜 옆나무처럼 쑥 자라지 않느냐고 채근할 수 없습니다. 숲의 나무들이 모두 함께 자란다면 햇빛을 통과시킬 여백을 다 가리고 서로 가지를 뻗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여 서로를 죽이고 맙니다. 그 숲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

어떤 것은 높이 자라 그늘을 만들고, 어떤 것은 그 그늘 속에서 더 잘  자라고. 그렇게 다른 높낮이로 숲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동물과 곤충의 생명들이 깃들어 이 숲을 지속 가능하게 만듭니다. 

어떤 씨앗은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발아하지 못하고 그냥 썩어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숲의 섭리에서 상실이 아닙니다.  그 씨는 기름진 흙이 되어 다시 생명으로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을 키우며, 그리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가며 씨앗의 발아원리와 숲의 역동에 대해  기억하려고 합니다. 우린 이렇게나 다른데 똑같은 때에 맞추어, 동일한 방식과 수준을 살아가는 것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어찌어찌 발맞추어 사는 것이 좋은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혹은 권력자들은 두려움, 또는 관성, 또는 이기적 욕망 때문에 어린 세대에게 성장촉진제를 들이 붓는 우를 범하거나, 이게 옳다고 공포를 조장하여, 그 두려움과 오류를 아랫세대에게 전승합니다. 

높고 푸른 나무가 되어 다른 나무의 그늘 없이 햇빛을 받아 더욱 푸르고 울창하게 자라는 것도 의미있지만 그 중간에는 훨씬 재밌고 다양한 세계가 있습니다. 자잘한 풀, 음지의 이끼도  흙을 붙잡고 새로 돋아날 씨앗들을 품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채 피어나지 못하여 사그라들어간, 그렇게 짧은 생명만을 누리고 떠나는 씨앗은, 얼른 보면 애달프지만 숲은 그 조차도 품고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숲의 깊음을 모두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숲을 만들어가시는 이 거대한 섭리앞에 그저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때로는 경탄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큰 나무와 작은 도토리의 대화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도토리의 한마디,  "내 안에서는 이미 약속이 자라고 있어요"가 기억에 남아 시시때때로 가슴을 울립니다.

아이들에게 '너의 안에 자라고 있는 약속을 믿는다'고, 공동체 식구들 안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약속을 믿는다고 말하며 오늘의 나눔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