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사랑의 이름으로 - 배이화 (20251221)

design_newbud 2026. 1. 3. 22:2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사랑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기독교는 그 어느 것보다 '사랑'을 말하는 종교입니다. 사랑은 이것을 주는 존재와 받는 존재사이의 위계, 나아가 경계를 허무는 것 처럼 느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교와 도교 사상이 오래도록 지배했던, 또한 수천년간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이 땅에서 자란 저에겐 사랑은 가끔은 어색하거나 때로는 파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그 누구보다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 <감정의 문화정치>의 저자 사라 아메드는 사회 속에서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한 일들을 몇 개 들어 이야기 했습니다. 

일례로 저자의 고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정책을 세워 사랑의 이름으로 원주민들의 아이들을 강제로 가정에서 분리하고 공교육에 편입시켜시켜 이른바 문명사회의 일원이 되게 만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원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화해의 작업이 진행중이나, 이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피해의 잔재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를 정상화 하는 작업은  정밀한 계획과 물질적 보상이 필요한데, 이 일을 실행하는 입장에선 그렇게 달갑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대할 때 취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쉬울 것입니다. 

작가는 사랑의 이름으로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타 인종을 배격하고, 다양한 성적 지향성을 애초부터 부정하며 결국에는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방식이 작동하는 경우를 이야기 합니다. 특이한 점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런 종류의 목소리에 기독교가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기독교인으로서의 낯뜨거움은 이제 하루 이틀일이 아닙니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틀릴 가능성에,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습이 변화할 가능성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 세계를 사랑의 이름에 걸맞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에 저항할 때, 우리가 단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는 다는것을 인정할 때, 아무리 조건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사랑에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타자들과 우리가 실현하려는 세계 사이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으로 말하는 일에 저항하라니. 얼핏 보면 지나치게 냉소적인  글입니다. 그렇지만 어쩐지 여기서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세상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저자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찬양에서는 기본값이요, 우리의 언어생활을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 말, 사랑. 이것을 실현해 가는 일에 다행히 우리에겐 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서  말보다 더 많은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기득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화려한 제국에 매료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약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망설이지 않으셨으며 미천하게 여겨지던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안아주고, 겉에 있어주며, 우셨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약자를 착취하거나 누군가의 목소리를 강제로 지우는 일에 의구심을 품는 것. 그게 나를 조금 불편하게 할지라도 기꺼이 연대하는 것. 개인적으로는 이웃을 살피고 그 한 순간의 작은 선물이 되어 주는 것. 곁에 있는 사람의 일상을 소중히 지키는 것. 그 누구도 어떤 대상으로 고착하거나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하셨을거라 상상해봅니다. 
 
사라 아메드의 차가운 선언처럼,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봐도 내 속에는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새움 공동체에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밉니다.